(상편 요약 3줄)
- 인터넷 버블이었던 20년전 나는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했다.
- 투자금 500만원 중 40만원 들여 주식투자비법이 담긴 비디오 강의테잎을 샀다.
-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PC방에 달려가 비법이 가르쳐준대로 종목을 몇개 골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 또 그만큼 순수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주식투자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거의 보진 않지만, 그때는 정말 인문고전보다 더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40만원짜리 그 비법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걸로 믿었다.
그래서 그 대가를 미리 지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식투자의 세계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비디오테잎을 몇번씩 돌려본 터라 일봉과 월봉 등 그래프를 보는 것은 나름 익숙했다. 하지만 분명히 올라야할 패턴임에도 주가는 고꾸라지곤 했다. 조금 오른 적도 있었지만, 어어어 하는 사이에 팔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무너져 내렸다.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시간은 제법 많았지만, 시간이 많다고 더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사지 못했고, 주문을 넣었음에도 팔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침에 조금 힘을 받는 듯 하다, 곧바로 하한가로 떨어져 버려 눈물을 머금고 손절매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후 2시 50분 장종료 10분전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상한가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보면 전형적인 주가조작세력의 개미 떨어내기다. (세력이 작업하는 주식을 정확히 알아본 것이니, 40만원짜리 공부는 제대로 한 게 맞은 건가?)
그렇게 많은 주식을 사고 팔았다. 비디오테잎이 강조한 핵심 단어 중 하나는 손절매였다. 손절매, 손절매, 손절매... 난 손절매는 참 잘했던 거 같다. 샀다가 10%이상 떨어지면 주저없이 팔았다. 왜, 투자금은 소중하니까. 샀다가 팔고, 또 샀다가 팔고.. 손절은 참 잘했는데.. 익절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이익을 내본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세력이 매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패턴을 찾아 매수하라는 투자기법을 학습한 것은 맞지만, 진짜 문제는 그 기법이 결과적으로 주가가 상승했던 종목으로만 검증했다는 점에 있었다. 즉, 같은 패턴을 보였지만 도리어 하락하는 케이스도 절반 이상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은 주가가 상승할 종목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야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배운 기법이 50% 이상 쓸모없음을 의미한다. 한 바구니의 달걀 가운데 병아리가 될 수 있는 유정란이 딱 하나 있다고 할 때 도대체 어떻게 구분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바구니 안에 유정란이 있기나 한 것인가.
(아마도 비디오 테잎이 손절매를 그렇게 강조했던 것도, 품어보니 무정란이어서 곯을 거 같으면 바로 손절하라는 의미였던 모양이다)
또 웃기는 일인 게 그 많은 주식들을 건드렸지만 지금까지 생각나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 내가 기준으로 삼았던 기준은 오로지 주가흐름과 거래량.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전망이 어떤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기업 이름도 유심히 안봤다. 종목코드만 기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한 달 즈음이 지나고 보니 500만원 부터 시작한 투자금이 100만원도 채 남지 않았다. 40만원은 비디오 테잎으로 남아있으니까 쓰린 마음이래도 그렇다 치지만, 360만원은 어디로 다 사라져버렸는 지... 한번에 큰 손해를 본 기억은 없다. 왜냐하면 손절매는 즉각 잘했으니까. 그런데 계속된 거래와 손실의 반복은 투자금의 대부분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더 큰 문제는 그 손해만큼 내가 배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패를 했으면 그 이유를 경험으로 배워야 그 다음부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텐데 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름 거액(?)을 주고 투자철학을 사려고 했지만, 정작 투자철학이 빠진 투자기법 비스무리한 껍데기만 얻은 것이었다. 물론 당시 나는 투자철학은 자신이 쌓아올려야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아니, 투자철학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었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주식투자는 결국 90%의 손실을 내고 끝났다.
만약 거래가 빈번하지 않았다면 주식이라도 남아있었겠지만, 내겐 사고 팔았던 거래기록밖엔 없었다. 문제의 비디오 테잎은 박스에 넣어 방 한구석에 뒀다가 그 이후 이사하면서 버린 걸로 기억한다.
처음 맛본 투자의 세계는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
한동안 다시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각오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당시 나는 "주식투자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애 최초의 투자 철학을 나름 세운 셈이다(아마 비슷한 철학을 가진 분들도 많을 듯 하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을 것이며, 보이지 않으면 투자하면 안된다. 투자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거리를 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평생 철저히 준수할 수 있다면 주식으로 뜬금없는 손해를 보진 않을테니 나쁜 투자철학이라고 볼 순 없겠다.
그런데
한동안(이라고 해봐야 몇달) 주식을 돌처럼 보던 내게 주식투자의 근본 개념을 바꿔준 인물을 만나고 말았다.
모두가 다 아는 투자의 전설.
바로 워렌 버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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